일상

아이 때문에 시작한 요리

음식 만드는 일에 다시 관심을 두게 된 건 순전히 아이 때문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그 아이가 살아갈 미래를 고민하다가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는 음식을 스스로 만들지 못하면 인스턴트 식품이나 식당 밥에 평생 의존하며 살아야 한다는 걸 생각하니 참 답답한 노릇이다. 어릴 적에 요리를 배울 기회를 잃어버리면 점점 바빠지는 생활에 치여 그 기회가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내가 어릴 적에 요리를 배우지 못해서 의존적으로 살아온 걸 내 아이가 답습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제일 컸다.

아들한테 음식 만드는 것을 가르치려면 내가 먼저 배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거지는 내가 맡아서 해왔지만, 음식은 전적으로 아내의 몫이었다. 부엌 근처에도 못 오게 하는 엄마와 살다 보니 요리는 딴 세상처럼 느껴졌다. 어릴 적에는 엄마한테 편하게 음식을 얻어먹을 수 있어 좋았지만, 커서는 음식 하나 제대로 못 하는 게 부끄럽고 불편했다. 자취를 시작하면 좀 나아질 줄 알았지만, 현실은 라면으로 끼니를 연명하기 일쑤였다. 아주 기본적인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정도만 할 줄 알았지 다른 건 배울 엄두도 안 냈다. 다행히 요리 잘하는 아내랑 결혼해서 그동안 잘 얻어먹고 살았다.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무척 높지만.

결혼해서 살면서 몇 번이나 요리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쉽게 포기하고 말았다. 실패해도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리를 배워서 아들한테 가르쳐줘야지 하는 생각이 드니까 좀 더 마음을 굳게 먹게 된다. 아이가 커서 혼자 살든지, 결혼해서 살든지, 음식은 기본적으로 할 줄 알아야 민폐를 덜 끼치지 않을까? 게다가 힘들 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줄 알면 마음에 위로가 된다. 아직 8개월밖에 안 된 아이를 두고 내가 너무 앞서 나가는 것 같지만 지금 배우지 않으면 기회가 영영 없을 것만 같았다. 이번 기회에 요리를 부지런히 배워서 식사의 절반은 내가 맡아보는 것도 작은 소망이다.

무턱대고 배우겠다고 떠벌렸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요리학원에 다닐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만약 간다고 해도 갈 데도 없다. 그렇다고 기본기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레시피만 보고 따라하기엔 내게 벅찼다. 일단 집에 있는 요리책들을 죽 훑어봤지만 만만해 보이는 건 없었다. 무슨 요리부터 배워야 할지 생초보에겐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기만 했다. 원래는 한식을 배우고 싶었는데, 내가 사는 동네가 미국 두메산골이라서 한국 음식 재료도 구하기 어려워서 한식은 일단 포기했다. 음식은 통하는 게 있으니 어느 나라 음식이든 배워두면 언젠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내가 배울 음식은 무조건 쉬워야 했다. 요리를 배워 식당을 차릴 것도 아니니 복잡한 레스토랑 음식은 제외했다. 그래서 심사숙고 끝에 고른 책이 바로 “Jamie’s Food Revolution”이다. 이 책의 머리말에 나와 있듯이, 나처럼 요리를 못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썼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다. 레시피는 주로 양식이지만 중식, 인도식 요리도 있어 다국적 입맛을 지향하는 나의 음식 취향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이 책에 있는 메뉴 중에 20가지 정도라도 손에 익혀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소박한 목표도 세웠다. 세상이 좋아져서 유튜브에서 음식명을 쳐보면 유명한 요리사들이 올려놓은 비디오가 즐비하니 그것도 참고로 해볼 요량이다. 구글 검색만 해도 필요한 레시피는 다 널려 있으니까 정보가 없어서 요리를 못 한다는 건 이제 핑계에 불과하다. 이렇게 책과 인터넷의 도움으로 나의 요리 도전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베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만만해 보이는 요리를 하나 골랐다. 닭가슴살 볶음국수라는 중국 음식인데 벌써 구미가 당겼다. 중식을 워낙 좋아하는데 평소에 즐겨 먹는 국수라니 결정을 내리기 어렵지 않았다.

예전에도 중국계 미국인이 쓴 중국 요리책을 따라 했는데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관둔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쉽게 썼다는 말만 믿고 다짜고짜 따라 해봤는데 쉽지 않았지만 완성할 수 있었다. 마침 유튜브에 동영상이 있어서 반복해서 보면서 비슷하게 만들 수 있었다. 국수를 삶으면서 동시에 볶아야 하는데 그걸 못 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 요리를 마스터하려면 몇 번은 더 해봐야겠지만 기본 원리는 어느 정도 터득한 것 같다. 완성하고 맛을 보는데 입맛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아내한테도 먹을 만 하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었다. 첫 번째 도전치곤 나쁘지 않은 결과라서 마음이 놓인다.

이렇게 블로그에 요리 도전기를 남기는 것도 끝까지 해보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나 같은 초보도 요리에 입문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일단 입 밖에 뱉은 말은 책임져야 하니까. 부디 요리하는 남자로 변신해서 가정의 평화와 아이의 미래까지 챙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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